대만 228 사건, 한국인 첫 배상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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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228 사건을 아시나요?

 

 

 1  228 사건 내용

 

1947년 2월 수만명의 대만 민중이 국민당 정부에게 항거하다가 참혹하게 살해되었던 날인데요. 2월28일 학살이 시작되어서 228사건 이라고 부릅니다.

사건의 발단은 2월27일 타이페이 시내에서 한 담배 상인이 전매총국 직원들과의 실랑이에서 시작되었는데요.. 무차별 적인 총격으로 시위대가 결성되고, 헌병대는 비무장 군중들에게 총을 난사하면서 사건이 커졌습니다. 길거리에는 온통 시체로 가득찼고, 산으로 도망가다 잡혀서 죽은 이들도 수만에서 수십만이라는 추정까지 나왔던 이 사건은, 1995년 대만 총통 리떵휘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국가에서 배상을 약속한다고 하여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2  첫 배상 청구자 한국인 박영심씨

 

이 사건의 현장에는 한국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올해 2월에 외국인에 대한 배상청구 신청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어서 76세인 박영심 씨가 아버지 박순정(당시 32세)도 대만 228사건에서 사망을 하였다고 하여 228사건 기념 기금회에 배상 청구를 했다고 합니다.

 

박영심씨는 한국 남부의 거문도 출신으로 선원이었던 박순정씨 가족은 1942년 당시 살고 있던 키타큐슈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대만 복부의 타카시로 이주 했다고 합니다.

 

향후 대만 국민당 정권이 이쪽을 장악하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상륙한 3일 후 박순정씨는 셋째 아들의 생일에 사용할 생선을 사러 갔다가 실종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박영심 씨의 어머니가 사고 목격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순정씨는 선착장에서 병사들에게 끌려갔으며, 끌려간 이유는 당시 선원들이 가지고 다니던 작은 칼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어를 사용 할 수 없었던 박순정씨는 구속 후 살해 당한것으로 보인다고 했답니다.

 

순심씨는 1993년에도 피해보상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외국인은 제외된다는 말을 듣고 포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어 순심씨는 "아버지가 희생된 것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머지의 이름을 새겨서 후세에 이 비극을 알리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이젠 배상청구를 했으니 앞으로 일이 잘 풀렸으면 하네요.

억울하게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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